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 (문단 편집) === 역사 ===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정진성 교수가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01502574|「경성제국대학의 입학 및 졸업 기회의 차등적 배분」]]에서 일제강점기의 경성제대 입시와 고교서열화를 정리한 바에 따르면 오늘날 고교별 서울대 합격생으로 평가받는 것과 유사하게 조선에 소재한 [[구제중학교|중등교육기관]]들은 [[경성제국대학]] 예과 합격생 숫자로 그 서열이 매겨졌다고 한다.[* 예과 1회(1924년 입학)부터 이공학부 신입생 선발이 이뤄지기 시작하기 전인 14회(1937년 입학)까지 경성제대 예과 입학생의 출신 학교를 알아보니 경성중학교(현 [[서울고등학교]])가 430명(연평균 30명 이상)을 기록해 압도적인 차이로 줄곧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252명(연평균 18명)의 합격생을 낸 용산중학교(현 [[용산고등학교]])와 합격생 182명(연평균 13명)을 배출한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가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1934년 경성중은 5학년 생도 176명 가운데 36명이 경성제대에 입학해 졸업생 대비 합격생 비율이 20%를 넘었으며, 용산중과 경기제일고보가 각각 11%와 10% 수준으로 그 뒤를 잇는 등 합격률 서열도 합격생 숫자 서열과 대동소이했다. 단, 일제강점기 경성제대 입학경쟁은 조선인보다 일본인에게 극도로 유리했음을 고려해야 하는데, 경성제대 입학생 쿼터는 암묵적으로 조선인:일본인 = 1:2로 할당되었고, 재조선 일본인은 그 비율이 가장 높았을 때도 조선 전체 인구의 10%가 안 되었다. 위에 언급된 학교들 가운데 경성중학교와 용산중학교는 100% 일본인 전용 학교였으며, 제일고보는 조선인과 일본인 학생이 함께 수업받는 학교였다.] 주로 일본인이 입학하던 중학교뿐만 아니라 조선인 중등교육기관이었던 [[고등보통학교]] 간에도 경성제대 예과 합격생 숫자에 따른 서열구조가 형성되었다. 정선이에 따르면 1924~1937년 사이에 입학해 예과를 수료한 전체 조선인 학생 687명 중 [[경기고등학교|경성제일고보]]가 182명을 배출해 26.5%을 차지하며 최고 명문학교의 지위를 공고히 했고, 이어 [[경복고등학교|경성제이고보]]가 79명(11.5%)으로 2위, [[평양제이중학교|평양고보]] 51명(7.4%), [[경북고등학교|대구고보]] 38명(5.5%), [[청주고|청주고보]] 33명(4.8%), 함흥고보 25명(3.6%), [[서울고등학교|경성중학]](조선인 학생만) 23명(3.3%), 신의주고보 22명(3.2%) 등의 순서로 소수의 학교에서 꾸준히 다수 합격자를 배출하여 명문으로 자리매김했고 [[구제중학교|중등학교]]의 위계적 구조화가 이루어져 해방 이후까지 고교서열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정선이, 「경성제국대학 연구」, 문음사, 2002. pp.95-99] 광복 직후 미군정의 영향으로 미국식 12학년제에 맞게 구제중학교가 5년제에서 6년제로 바뀌었고, 6.25가 끝난 직후 근대적 중등 교육 강화 방안으로 기존 [[구제중학교]](6년제)를 [[중학교]](3년제)와 [[고등학교]](3년제)로 분리했다. 1968년까지는 고등학교 입시와 함께 [[중학교]]도 입학시험을 실시하여 학교 간에 명확한 서열이 있었다. 모두 중학교 입학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또한 의무교육도 아니어서 잘사는 집안이 아니라면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일터에 나가거나 부모의 일을 돕는 경우가 허다하여, 중학교 진학률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30~50% 안팍에 그쳤고, 못사는 집안에서는 성적이 좋은 자녀나 장남만 상급학교로 진학시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한편 이 당시에는 중학생 입시가 매우 치열했다. 체감으로는 고교 입시나 대입보다 중학교 입시가 더 치열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왜냐면 당시 명문 중학교에 들어가면 명문고에 수월하게 진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기중에 합격하면 거기서 낙오되지 않는 이상 대부분 경기고로 진학했고, 경기고 졸업생 중 절반 이상이 서울대에, 나머지 절반도 대부분 연고대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문중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명문대 입학까지 이어지는 구조였기에 중학교 입시가 대단히 치열했다. 그래서 명문중에 입시하기 위해 재수하는 13살 재수생들이 급증했는데, 중학교 입시가 폐지되기 직전인 1968년 13살 재수생이 서울시에만도 6천여명이나 존재했던 것으로 추산되었다. 당시 서울의 학원가였던 종로2가 학원가에는 대입 학원 못지 않게 중학생 학원이 성업했다. 하지만 과도한 교육열로 인해 어린 국민학생들을 지나치게 혹사시키는데다가 [[무즙 파동]], [[창칼 파동]] 등 시험출제 오류사건까지 발생하여 중학교 입시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었으며 사회적으로 보았을때도 경제성장에 따라 중등교육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과정에서 사교육 수요도 같이 늘었기에 중학교를 지속적으로 서열화한 채로 냅두기에는 문제점이 많았다. 결국 1968년 7월 15일 정부는 서울시를 시작으로 중학교 입시를 폐지한다는 교육개혁을 발표했다. 그리하여 [[1969년]] [[서울특별시]]에서 중학교 입시가 폐지된 것을 시작으로 [[1970년]]에는 [[부산광역시|부산직할시]]· [[대구광역시|대구시]]· [[광주광역시|광주시]]· [[대전광역시|대전시]] ·[[인천광역시|인천시]] ·[[전주시]]로 확대되었고, '''[[1971년]]에는 중학교 입시가 [[대한민국]] 모든 지역에서 폐지되었다.''' 그때부터 중학교 입학 시에는 선발고사 없이, 무작위 [[추첨]]이나 근거리 배정 방식을 통해 입학하게 된다. 이때부터 무작위로 중학교에 진학한 세대를 흔히 ‘[[뺑뺑이]] 세대’라 한다. [[1970년대]]부터 [[중학교]]는 완전 평준화되어 무시험으로 입학이 가능하며 학교 간 서열은 사라졌다. 비평준화가 정점에 이르렀던 60년대말 ~ 70년대초 경기고가 정점에 있는데, 경기고는 졸업생(N수생)의 절반 가량인 300명 이상이 서울대에 합격하는 유일한 고등학교였다. 그 밑으로 서울고, 경복고가 200명 내외의 서울대 합격자를 내며 경기고와 함께 3대 명문고로 불렸다. 그 밑으로는 경기여고, 경남고, 부산고, 경북고, 광주일고가 순서대로 100명 이상의 서울대 합격자를 냈으며, 특히 경기여고와 경남고, 부산고는 60년대에도 100명 이상의 서울대 합격자를 냈지만 70년대 이후에는 150명 내외 이상의 서울대 합격자를 냈다. 또한 경북고와 광주일고가 100명 남짓의 거의 비슷한 서울대 합격자수를 내며 엎치락뒤치락했다. 그 아래로 용산고 대전고 전주고까지가 서울대에 100명에 근접하는 합격자수를 내는 명문고였다. 중학교 입시 폐지로 중학교 진학이 평준화되면서 명문 고등학교 진학경쟁은 더더욱 치열해졌다. 서울 종로2가 학원가는 대입 학원보다 고입, 즉 중학생 학원이 더 성업했다. 사교육을 억제하기 위해 1970년부터 문교부 지침으로 일선 고등학교에 [[야간자율학습]]이 사실상 강제화되었다. 이로 인해 고등학생은 학원 수강이 어렵게 되어 고교생 대상 학원은 위축되고 중학생 아니면 재수생 학원으로 양분화되었다. 고교 입시가 과열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1974년]], 당시 정부 직할이었던 [[서울특별시]]와''' '''[[부산광역시|부산직할시]]'''에 최초로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가 적용되었다. 그 후 고교 평준화가 확대되어 갔다. 중·고교 평준화는 [[박정희]]의 아들 [[박지만]]의 중·고교에 입학 시기와 겹친다. 이를 보고 평준화 자체가 '불순한 의도에서 시작되었다'라고 주장하는 50대 이상의 기성 세대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시기상으로 묘하게 일치하기는 하지만 직접적 증거는 없다. 또한 [[1969년]]의 [[중학교]] 입시 폐지에서 보듯, [[고등학교]] 입시 폐지 및 평준화 제도 도입 방안은 대한민국 정부 정책 상 큰 틀에서는 이미 진행중인 사안이었다. 단지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완충기간을 고려하여 세부적으로 어느해부터 전격적으로 도입할지가 문제였을 뿐이다. 또한 그때 깔려있던 [[경기고]], [[경남고]], [[경북고]] 등 지역별 고등학교 학벌로 뭉쳐있던 대한민국 관료들의 [[카르텔]]을 [[군사정권]]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권력을 가졌을 때 이들 세력을 해체할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는 썰도 있다. 고교평준화에 대해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비평준화 폐지 당시를 보면 명문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국민학생 시절부터 매일 12시까지 공부했던 우등생들은 중학교 입시 폐지가 발표되자 분노했다고 한다.], 당시는 [[대한민국 제4공화국|제4공화국 유신시대]]라 공개적인 반발은 드물었고, 단지 뒤에서 푸념을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비평준화 시절 명문고 입학생의 엘리트 의식까지 동시에 사라진 것은 아니라서, 평준화 정책 이전 서울지역 3대 명문고교라 불리던 [[경기고]], [[경복고]]의 경우는 아예 평준화 정책 적용연도(학번상 1977[[학번]])을 기준으로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가 아예 갈라져서 이전 세대 동문들이 이후 세대를 뺑뺑이 세대로 비하하며 [[동문회]]도 따로 개최하는 등 학벌주의적 차별 행태를 공공연하게 보였인 바 있다. 그 외에 각기 대도시에 위치한 유명 고등학교의 경우도 [[http://blog.daum.net/jschoi5206/7759497|비슷하게 평준화 시기를 중심으로 동문회가 갈린 사례가 많다.]] 또한 하필 이 때를 기점으로 서울 내 명문고 대다수가 강남으로 이전했기 때문에[* 휘문고(1978년 1월, 종로구 원서동 - 강남구 대치동), 정신여고(1978년 12월, 종로구 연지동 - 송파구 잠실동), 수도전지공고(1979년 3월, 마포구 공덕동 - 강남구 개포동), 동북고(1980년 12월, 중구 장충동 - 강동구 둔촌동), 숙명여고(1981년 3월, 종로구 수송동 - 강남구 도곡동), 한영고(1983년 4월, 성동구 마장동 - 강동구 상일동), 중동고 (1984년 2월, 종로구 수송동 - 강남구 일원동), 배재고(1984년 2월, 중구 정동 - 강동구 고덕동), 배명고(1984년 2월, 중구 신당동 - 강남구 일원동), 마포고(1985년 2월, 마포구 도화동 - 강서구 등촌동), 동덕여고(1986년 2월, 동대문구 창신동 - 서초구 방배동), 세종고(1987년 2월, 성동구 군자동 - 강남구 수서동), 경기여고(1988년 2월, 중구 정동 - 강남구 개포동, 공립), 양정고(1988년 2월, 중구 만리동 - 양천구 목동), 창덕여고(1989년 2월, 종로구 재동 - 송파구 방이동), 보성고(1989년 5월, 종로구 혜화동 - 송파구 방이동), 진명여고(1989년 8월, 종로구 창성동 - 양천구 목동)], 학교의 구성원 수준의 변화 뿐만 아니라 자신이 다녔던 모교 교정([[캠퍼스]])의 '''추억''' 또한 사라져 이전 강북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들의 기억에는 '''이름만 같은 다른 학교'''로 인식되는 현상을 낳았다. 그렇게 하여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은 [[대도시]]/준대도시 지역은 현재 모두 평준화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에, 한국 국민 중 75.1% 정도가 고교 평준화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작년 말(2018년)에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육개발원]]에서 교육 여론조사를 한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사고, 외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느냐? 찬성이 47.2%고요. 반대가 15.2%입니다. 일반고 전환에 찬성하는 여론이 반대에 무려 세 배 이상 나와요. 이게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비슷한 여론조사를 보면 늘 이런 비율로 나왔습니다. (중략) 교육개발원에서 매년 교육 여론조사라는 걸 하거든요. 그런데 매년 똑같은 질문을 하는 게 있습니다. 그게 고교 평준화에 대해서 찬성하느냐? 그러면 한 2/3 정도가 찬성 반응이 나옵니다. 또 다양화에 대해서 찬성하느냐? 이렇게 물어보면 또 한 2/3 가까이가 찬성 반응이 나와요. 매년 비슷하게 나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평준화도 찬성하고, 다양화도 찬성하니까 정신 분열인 거냐? 그게 아니고요. 평준화가 의미하는 것은 교육 기회 균등이죠. 조금 균등한 교육 기회를 달라. 이런 것이고, 다양화를 찬성하는 것은 배움의 기회를 다양하게 달라, 획일적 교육 좀 하지 마라, 이런 얘기거든요. 현재 일반고에서 상당히 예전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하던 커리큘럼 그대로 획일적 교육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학생들의 다양한 개인별 선택에 의해서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줘라. 이런 여론이 보편적이지만, 그와 동시에 일부 학교가 성적 좋은 학생들을 뽑아가서 1류 고, 2류 고, 3류 고 나누는 이런 식의 서열화 체제는 만들지 말라, 이게 우리나라 국민들의 평균적인 여론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죠. 전체적인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의 시스템도 이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죠.(하략)" >---- >[[이범]] 교육평론가 [[https://radio.ytn.co.kr/program/?f=2&id=63413&s_mcd=0263&s_hcd=01|출처]] 당사자인 중3 [[학생]]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지만, 전체 [[여론조사]]는 대체로 평준화 제도 선호가 훨씬 높게 나타난다. '''어차피 비평준화 제도 아래서는 명문고에 진학 가능한 최상위권 학생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는 인식이 많았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